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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삶

나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욕망'과 '조종'의 여왕

by 세헤라자데69 2020. 7. 18.


세상 만물의 법칙을 알고 있는 듯한 한 남자가 10월의 어느 가을날 대뜸 내게 이런 진단을 내렸다.

 

"당신은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분이에요."

 

위계질서라는 이 투박하고 레트로한 네 글자에 순간 풉 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콱 와서 박히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매우 자유로운 영혼인 듯 살고 있지만 실은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주파수와 그 강력함에 부여되는 질서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권력, 즉 ‘위계질서’란 것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핵심은 ‘미묘한’ 에 있다. 눈에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그건 너무 촌스러우니까. 마치 픽업 아티스트가 매뉴얼에 따라 내뱉는 언행이 열 수 앞까지 내다보일 정도로 훤해서 그 단순함과 한심함이 우리의 신경을 거스르고 마는 것처럼.

 

내 인생의 욕망이라면 사람들의 그런 정신 속으로 파고들어 미묘하게 그들을 조종하는 것이다.

 

1984의 독재자나 달빛기사단 등을 거느리는 정치인과 같은 뻔한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세련된 방식을 아마 원한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는 성과를 보고 있고, 이를 관찰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사람들이 내 언어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때, 영향을 받았음을 몸소 증명해버리고 말 때, 그들의 반응적 감정이 내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느껴지기까지도 할 때, 비로소 나는 내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특히 내가 의도한 반응이 선물 처럼 결과로 주어질 때가 가장 쾌감이 극대화된다.

 

이런 경우는 보통 세포가 반응하듯 즉각적으로 계산을 끝내고, 전구가 켜지듯 완벽한 문장이든 표현이 배열되며, 늦지 않게 이것이 출력되어 상대에게 가 닿는다.

 

다른 인간관계에 비해 남자관계에서는 이것이 다소 막혀있었던 측면이 있었다.

 

다른 인간관계나 하등의 다를 것 없이 똑같이 나였으면 되었을 일을 괜히 ‘특별한’ 관계로 인식해 망쳐버린 부분이 컸다. 한편으로는 다른 관계에서 장점이 되는 나의 자아가 이성관계에서는 나를 옭아매기도 했다. 그조차 품고 뛰어넘음으로써 만렙을 찍는 날을 지향하고 있다.

 

사실 지금도 심상화 모드로 생생히 구현해내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보통 이 작업에 성공하면 곧 머릿속에 그려냈던 대로 실제로도 큰 장애물 없이 ‘그것’이 나타나곤 했다.

 

이쯤 되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느덧 내안의 마지막 조급함이 사라졌다. 그저 함께 어울려 즐기기만 하면 된다.

나의 격조 높은 영감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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