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을 정처없이 걷다가 문득 눈앞에 나타난 그랜드하얏트 호텔. 영어로 쓰인 Grand Hyatt 라는 문패만이 겨우 보이는 호텔 건물 앞엔 수십 그루의 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서 있다. 몸통과 가지에 빽빽이 매달린 전구의 행렬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들숨과 날숨을 한번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내안의 어떤 욕망 덩어리가 꿈틀대는듯 하다. 나갔다 들어갔다..
한산하고 조금은 외딴 느낌의 그 호텔 로비를 향해 무언가에 홀린듯 걷는다. 드나드는 사람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호텔이란 공간이 주는 특별함, 고급감, 고립감, 우월감, 편안함 등에 왜인지 취하고 싶은 저녁이다.
라이브피아노 공연을 한다는 파리스바에 들렀다.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다. 적막감 속에 또각거리는 구두굽 소리를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채워본다. 여유로운 척 미소지으며 창가에 자리잡는다. 자연스러운 몸짓이고 싶어 가벼운 스트레칭을 해본다. 무언가 잘 모르겠는 베이스를 채운 마티니를 주문한다.
모든 것을 가진 여자.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모토가 된 이 한 문장은 오늘도 머리를 뒤덮고 있다. 어떤 강박 같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쉽사리 떠나보낼 수 없는 그런 콘셉트랄까. 인생의 동력이 되어주고 있달까.
대체 빌어먹을 저 '모든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자의 일생으로서 대부분이 상상하는 그런 목표들이면 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눈부신 외모, 늦지 않은 결혼, 훌륭한 남편감, 괴롭히지 않는 시댁, 순산과 적당한 자녀 수와 그들의 퀄리티, 최대한 지속되는 동안과 탱탱한 몸매, 좀 더 욕심내자면 단절되지 않는 경력과 점점 올라가는 사회적 평판 등등.
써놓고 보니 사실 부정하기 힘든 가치들이다. 그러니 나 역시 별반 다를 것 없이, 하릴없이 저 같은 지극히 통속적인 목표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아니 외면은커녕 대놓고 그것을 향해 내달리고 있을 때가 태반이다. 이것은 그냥 솔직함을 추구하는 것이자 현실적인 염소자리 AB형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자 사회적 인간으로서 내 위치를 그저 잘 보여주는 지표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나는 나를 차별화하고자, 어떤 측면에서는 우월감마저 갖고자, 세상을 위에서 내려깔보듯 보고 그들을 비웃어주고 보란듯이 판을 뒤엎어버리고 싶다. 그러한 욕망으로 들끓곤 한다. 바로 앞에서 말한 저 목표, '모든 것을 가진 여자'가 됨으로써 이를 실현하려는 욕심 같은 것일까. 아니, 이것을 욕심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의문을 품는다. 적확한 단어가 아니다. 왜냐면 저 목표를 실현한다는 건 그냥 거기에 순응하는 태도가 아닌가 해서다.
그러나 한번 깊이 생각해보면 그게 아님을 또 깨닫게 된다. 저 '모든 것을 가진 여자'란 실은 불가능한 목표에 가까워서다. 불가능함을 채찍질하며 한국 여자들을 후려쳐 온 지난한 그 역사를 떠올린다. 즉, 저와 같은 목표를 주입해 온 것은 실은 한국 여자들을 손쉽게 후려쳐서 현실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게 만드는 기능을 했으면 했지 그들을 한치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 목표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가. 그 모순적 욕망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우리를 이렇게 만든 세상을 보기좋게 비웃어버리기 위해서라고 하면 억지일까. 그 길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나는 계속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결국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인데 나는 내가 차별화되었으며 그로써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쉽지 않은 길이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가고 싶다. 보따리를 하나 하나 풀어내듯 퀘스트를 하나씩 해치우듯 끝없이 걷고 무한히 배를 채우며 무소의 뿔처럼 가는 일. 여기에 소명의식마저 느꼈다면 우스운 모습이 되어버릴까.
그 완벽한 여자가 가진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정의하며 프롤로그를 닫을까 한다. 사실 정확히 표현하면 앞서 언급한 사회적 목표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부스러기들에 불과하다. 저걸 얻기 위해 애쓰는 삶이란 부질없어지는 이유다. 저건 얻고자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버리고자 했을 때 얻어지는 '덤' 같은 것이다. 그럼 정말 얻고자 해야 할 건 무엇일까. 그것이 본질이고 정수다. 그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을 작정이다. 물론 나 역시 여정을 막 시작한 조무래기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뻔뻔히 쓰련다. 왜냐면 수많은 이들이 여기에 공감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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