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것은 수동성이고, 사랑하는 것은 능동성입니다.
한국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 부족한 것은 후자이고요.
스스로 '사랑해도 되는 존재'라는 자각이 없습니다.
건강한 자존감이 떨어지는 편이고,
내 의견을 표시하고 호불호 밝히는 일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을 본능적으로 원하기에
내가 그것을 능동적으로 낚아채기엔 힘든 상황에서
결국 누가 나를 사랑해줘야만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매우 수동적이며, 간접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서 가는 겁니다.
이러려면 사실 나의 주관을 갖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죠.
그래서 그토록 여자들이 자아를 갖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두려워합니다.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어요. 내가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선택당해야 하는 상황에선!
나의 개성이 너무 뚜렷한 것이 문제가 되거든요.
이럴 때는 결국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형인 자가 되는 편이 정답입니다.
모든 인간관계, 사회생활에서 한국 여자들의 행동 양식이 이것에 지배당해 있습니다.
남녀관계도 그 중 전형적인 한 가지 유형이며, 여자들은 '남자들이 이런 여자를 좋아하는가'
여기에 매몰되어 자신의 외양이나 내면을 점검하고, 검열합니다.
그럼 그냥 이렇게 하던대로 가면 되지 않냐고요?
문제가 있으니까 적고 있는 것일텐데요. 그 문제는 바로, 무시무시하게도,
이러는 동안 나 자신이 사라져간다, 소멸해간다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좋아해주고 건져주면 뭐해요? 정작 나 자신이 없는데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애정을 갖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것, 몰입해서 빠져드는 것,
이 모든 것이 점점 빠진 채로 나는 누군가로부터 구원받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내 거지 같은 현실을 마법처럼 바꿔줘야 하는 것이죠.
근데 알 만한 여자들은 압니다. 이것이 환상이라는 것을요.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 그 왕자라고 아무 이유 없이 사랑을, 복지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여자들은 이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남자친구가, 남편이 있으면 그래도 실패하진 않은 삶이라고 여깁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가 날 건사해주긴 했다고, 내가 그렇게 매력 없는 여자는 아니라고 자위하며 살아갑니다.
최소한의 마지노선 목표치는 달성했으니 다른 모든 것은 눈감아 버립니다.
내가 행복한 건 어떤 기분이고, 열렬하게 도취되는 충만한 느낌은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아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가는 무언가 빠진 느낌, 공허한 상태를 경험할 수밖에 없죠.
아, 그렇게 아등바등 애를 써서 평타 이상을 이루어냈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앙꼬 없는 찐빵 같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지만 이제와서는 아무런 손을 쓰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쌓아놓은 것들을 다 허물기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와 버렸습니다.
결국 또 다른 자아 의탁 대상을 찾아 나섭니다. 연애, 결혼 전엔 그것이 남자였다면 이후엔 또 다른 무언가가 됩니다.
영원히 의탁하지 않고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든 악순환을 그리게 됩니다.
조금 과장하여 암울하게 그리긴 했지만 내가 나를 무시하며 살면 대동소이하게 이렇게 전개가 됩니다.
그 전에, 진짜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사랑하고 싶은 것들을 정립해보기를 권합니다.
저렇게 살았을 때 가장 궁극의 목표는 '세상 모든 존재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되는데,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라서도 안되는 일이니까요.
세상이 그렇게 내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나는 그저 한낱 조그만 장기말일 뿐이에요.
모두가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대신 내가 사랑하는 것을 향해 목표를 집중하도록 합시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갖는다는 단순한 이치에만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사실 여자들에게 이 단순한 원리조차 실현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놓은 것이 세상의 악랄한 원리이거든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가져? 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놓았기에
나는 뒷전에 두고, 나를 타인이 원하도록 주파수가 만들어지고 말았죠.
이것은 무해한 음모처럼 세상에 퍼져 있습니다. 그 또한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내가 원하는 것, 그냥 내가 갖기로 선택하면 됩니다.
다른 복잡한 무엇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가 그것을 거부했기에 그것은 내게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남자든, 사회적 목표든, 재산이든 그것은 내가 원할 때에만 나에게 올 것입니다.
애초에 한번도 진지하게 이것을 바라보지 않았던 나를 돌아볼 때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과연 나는 남들이 나를 원하도록 하는 데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을까요.
결국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진짜 더 행복한 삶인지를 말입니다.
남자의 사랑을 받고, 애정의 대상이 되고 이런 것은 다 부수적인 것입니다.
내가 욕망하는 것을 손에 쥐는 삶이 되면 이 모든 것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그들이 내게 걸어들어오기도 합니다.
그 여정을 계속해서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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