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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모든 것

'못난 남자'에 대한 단상(왜 세상엔 나쁜놈 아니면 못난놈밖에 없을까)

by 세헤라자데69 2020. 8. 13.

아무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실수하는 동물이라지만,

그래도 연인관계라는 그 소중하고 특수한 사이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단 한번 실수로 '망했다'고 생각하며 툭- 놓아버릴 정도가 되는 그들의 무책임함이 참 싫었다.

너무나 유약하고, 볼품이 없다. 맷집이란 것이 없나 보다. 이건 어쩌다 만난 못난 남친 한 명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것들 이라 부를 만한 젊은 2030 남자애들은 대부분 이런 경향을 보였다. (물론 내가 유독 그런 이들을 만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나약한 사람을 싫어한다. 나까지 취약한 존재로 전염시켜 버리고 말 것 같은 그 불안정성, 같이 망하자고 끌어내리는 듯한 그 지독한 감염력에 신물이 난다. 구원? 어쩌란 건가 싶다. 나는 나 자신을 구원하기에도 바빠. 꺼져.

인간은 부족한 존재라고? 태생적으로 취약함을 안고 있으며 그래서 실수하기 마련이라고? 웃기지 마시라.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의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노력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이건 타고나고 말고 할 것이 아니다. 그걸 못하는 건 합리화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할 일이며, 힘들지만 개선해나가겠다고 결심해야 함에 마땅하다. 그거 못하면.. 그만한 민폐가 없지. 꼭 손찌검을 해야 민폐가 아니란다.

거품처럼 사르르 녹아버리는 그 허망한 애정과 사랑과 욕망의 실체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배신감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저렇게 애새끼 같아서 어떻게 장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그와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나의 미래를 그리고 함께 인생을 꾸려갈 수 있을까.

단 한순간에 신뢰도를 박살내고,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건 다름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나는 끝없이 그들을 구원하고자 했고, 기회를 주고 싶었고, 기다렸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허망했다. 나혼자 애쓰는 꼴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용기 없는 태도, 지나치게 쉽게 풀이 죽는 꼬락서니, 후다닥 은둔해버리는 병아리 같은 병약함. 그런 것들에 혀를 내둘렀다.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가 기회를 주고 용서를 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결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내 손으로 매번 그들을 끄집어내고 광명을 찾게 해주고 다시금 약간의 질책을 하거나 함께 깨가 쏟아지거나 잠시 잠깐 행복의 나라로 가거나 하지만. 내가 애써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지면 피곤해졌다. 그것은 동등한 관계가 아닌 것이다. 단순히 갑-을 관계라거나 어느 쪽이 주도권을 갖는 그런 개념의 동등함이 아니다. 에너지 레벨, 그릇 차이가 동등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결국, 번지수를 잘못 찾은 셈이었다.

아프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매번의 관계는 그러한 깨달음과 함께 끝이 났다. 매번 약간의 기대를 갖고 시작하고, 어김없는 실망과 함께 쫑이 났다.

이 남자들의 심리란 마치 그런 것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무기력한 남주인공 같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부끄러움 많은 생을 살았습니다" 하며 쪼그라드는 요조와 같은. 그런 자기연민의 끝판왕들이다.

 


자기 자신의 못남을 직면하되 그것이 너무나 괴로워 스스로가 싫어진다. 그걸 거울처럼 확대해서 보여주는 여자의 존재가 점점 그악스러워진다. 너무나 멋진 이 여자를 사랑하고 점점 좋아질수록 자신의 초라함이 커져가는 느낌이 괴롭다. 이것은 여자의 문제인가? 남자의 문제인가?

이러한 자기연민의 최악인 부분은 이들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실천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성장시켜 그 자기연민에서 해방하는 건강한 루트를 택하지 않는다. 

(당신이 1초라도 빨리 그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 이유다. 미적거리다가 같이 망한다.)

 

이들은 그저 그자리에 맴돌며 점점 더 초라해지는 자신을 연민하고, 혐오하고, 더 깊은 땅으로 파고 들어갈뿐이다. 그 부정적 에너지를 감당해 낼 여자란, 그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정신이 병들어 있거나 구원자 콤플렉스 같은 것에 빠져서 함께 망하자는 길을 택하게 될 뿐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언제나 나는 그 관계를 끝을 냈다. 같이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은 그 느낌을 언제나 감지하는 그 순간은, 참 엿같다. 어떨 때는 그럼에도 함께할 때의 달콤한 순간을 마약처럼 못 잊어서 쉽게 끊어내지 못하기도 했다. 

또 다른 최악인 부분이라면 이들은 대놓고 쓰레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못난 남자인 것이지 나쁜 남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 나쁜 남자보다 나쁜 게 못난 남자다. 마구 미워하기에도 미안해지고, 그들의 진심이란 걸 알기에 질질 끌게 되는 내 감정을 또한 처리해야 한다. 그 과정이 정말 마음이 아프단 것이다. 염병할.

많은 경우 그 못난 남자들을 당신을 진짜 사랑했을 것이다.(이것이 숨은 또 다른 소름 포인트) 그들의 마음만큼은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내 당신은 결론내릴 것이다. 아, 차라리 나쁜 놈이었다면! 하고. 그러면 이 이야기를 끝내기에는 더 깔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레기와 나쁜 남자 역시 판치는 세상이라는 점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신이 아마 저 못난 남자 쪽으로 빠진 것은 나쁜 남자를 걸러낼 눈이나 촉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당신의 철벽 레벨이 높을 때에도 나쁜 남자는 자동으로 걸러진다.

이 말은 곧, 못난 남자가 당신에게 해를 끼치는 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범죄에 휘말린다거나 전쟁 같이 볼꼴 못볼 꼴 다 보는 그런 지랄맞음은 없이 순탄하고, 소소하게 행복한 관계를 이어갈 수는 있다.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인데, 결국 그들의 한계를 직시하고 관계를 놓고자 할 때 결정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찢어지게 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결국 이 나약한 영혼들과 매번 얽힐 것이란 점이다. 그래도 나쁜 매력남보다는 이런 순수한 애들을 더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꼭 무매력인 것은 아니다. 무매력은 그 어떤 순간에도 만나면 안된다. 그건 범죄다. 

나쁜 놈 아니면 못난 놈만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아니다"고 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일단 인정하자. 

그리고 지치지 말기로 약속하자. 

 

당신이 괜찮은 여자로 커가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 눈높이에 맞는 상대는 어딘가에 분명 존재한다. 기대와 실망을 내려놓고, 그저 무던하게 새로운 이를 받아들이고 헐어버린 관계는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것. 그러니 마음 추스르고, 정신 차리고, 내 인생을 일단 멋지게 살기를 바란다. 남을 구원해 줄 생각 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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